세월호 아카이브구축 참여자 분들에게 드리는 질문입니다.
(답하기 어려운질문은 생략해도 된다고하네요)
이름, 소속과 함께 댓글로 답을 달아주세요~
1. 2014년 4월16일날 하루동안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기억 나시나요?
2. 세월호는 당신에게 어떤의미 인가요?
3.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가장 슬펐던 지점은?
4.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세월호와 인연이 있다면?
6.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변화했다고 느끼시는 점은?
7.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가 가장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8. 세월호 아카이브 작업에 참여하시게 된 이유는?
내일 자정까지 부탁드립니다!
그날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위내시경을 받으러 갔었어요 (생애 첫 내시경이라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때는 학생이었고 오전수업이 있어서 아침 일찍 병원에 갔었죠. 마침 병원 로비에서 여객선이 침몰중이라는 속보가 나오더라구요. 세월호였어요. 하지만 곧 '승객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이어서 올라왔고, 저는 "그래 우리나라 정도 같은 국가가 그 정도 구조는 그냥 하는거지. 이게 속보거리라도 되나"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죠.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저녁에 나오는 뉴스에서는 전원 구조는 오보였고, 여전히 백명이 넘는 승객들이 갇혀있다.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분노도 슬픔도 아니었어요. 그냥 '의아함'이었던 것 같아요. 침몰 직전에 헬기도 뜨고 카메라도 뜨고 해경도 도착했는데 왜 구하지 못한거지 하는 의문이 먼저 강하게 들었어요. 3.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가장 슬펐던 지점은?
유가족 분들은 가족을 잃은 것만으로도 힘드실 텐데,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정부, 어용단체들과 몇몇 언론들에게 부당하게 매도 당하고 피해를 받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4.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임은 세월호 침몰에 대한 책임과 구조에 대한 책임으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전자인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에는 여러 주장도 있고,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조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정부입니다. 해경의 대응, 정부 컨트롤 타워의 대응이 미숙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것을 규명하고자 하는 조사를 정부가 방해해왔다는 사실도 그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6.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변화했다고 느끼시는 점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정부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게 된 것 같아요.
국가별 청렴도 지수를 조사하면 우리나라 정부가 하위권으로 나온다죠.
국민들이 과거의 정부를 '부패한 정부'라고 인식해왔다면,
이제는 거기에 더해 '무능한 정부'라는 인식이 더해진 것 같아요.
정부를 믿을 수 없다. 그래서 위기가 오면 정부에 의지할 것이아니라, 각자도생할 방법을 찾거나 시민들끼리 뭉쳐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7.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가 가장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무너진 정부에 대한 신뢰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부패하고 무능해서 탄핵까지 된 전 정부를 반성하고, 혹시 나중에라도 그러한 자들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되더라도 국정이 파탄이 나지 않고 국민들이 고통받지않을 그런 시스템이 만들어 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날 당시에 대한 제대로된 기억이 없어요. 여느 때처럼 한창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일엔 속보 정도로만 이야기를 듣고, 단순 사고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기억이 오래 남아있습니다. 짐처럼. 2. 세월호는 당신에게 어떤의미 인가요?
슬픔.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참사가 있은 후 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본인 SNS 계정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정말 죄송하고 말도 안되지만, 저는 정말 무감했습니다. 모두 애도를 하는 분위기에 나도 그냥 있을 수 없어, 당시 다니던 회사 로고를 변형하여 노란 리본을 디자인하고 사진을 게시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디자인에 반응을 했어요. 많은 공감과 슬픔의 언어들을 하루 종일 읽고 기분이 이상했어요. 저는 정말 무감하게 게재한 사진에 많은 사람들이 슬픔의 감정을 공유한 내용을 보면서, 저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저에게 충격 받았어요. 나는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보이는 것에만 감정을 느낀다는 걸 깨닫게 된 첫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이게 마음의 빚으로 남아서 타인의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끊임없이 “나는 과연 슬픈지” 되뇌었습니다. 내가 감정을 느끼는지, 느끼지 못하는지도 모를 만큼 둔한 감각을 깨우려고 일부러 세월호 유가족 대상으로 한 센터의 로고를 디자인하거나, 단원고 교육지원 포스터를 디자인하는 등 계속해서 내가 이 사건을 어떻게 느끼는지 관찰하고 싶었어요. 3.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가장 슬펐던 지점은?
그렇게 계속 관찰하면서 지낸 1년의 시간 후에, 명동성당에서 1주기 미사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제가 제 발로 간 것은 아니고 -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성당엘 가보고 싶다하여, 안내해주러 갔어요. 미사에서 유가족을 바라보고, 1주기 미사 때문에 처음으로 성당에 온 지인을 바라보고, 명동 성당의 높은 천장을 바라봤습니다. “내가 과연 슬픈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혼란스러워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어요. 그러다 그 날 뉴스를 둘러보고선 한참을 울었습니다. 세월호 1주기에 참석한 사람들과 대치된 경찰, 그들을 보호하려고 유가족이 서로서로 팔짱을 끼고 사람들을 둘러 보호하고 있는 사진이었어요. 그 표정을 보고 한번에 무너졌습니다. 마치 속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눈으로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서 있는, 단단하고 비장한 표정이었어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의 표정을, 저는 처음 봤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되돌리지 못하는 슬픔을 겪은 사람들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엇이든 했던 그 용기 때문에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고, 나는 그 용기 덕분에 오늘 하루도 보호받고 있던 거라는걸 깨달았어요. 4. 세월호 참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5. 세월호와 인연이 있다면?
사고가 나던 때 저는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구를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었어요. 4월이라 한창 이런 저런 청소년 외부 활동이 많은 시즌이었어요. 청소년 캠프를 크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여러 학교에서 줄줄이 수학여행을 취소했고, 계약되어 있던 사업이 모두 중단되었습니다.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회사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사업이 한번에 무너지고 사정이 어려워져서 저도 그만두게 되었죠. 게다가 제 고향이 수학여행지로 유명한 경주에요. 펜션을 하는 부모님도 고향에 관광사업을 하시는 지인 분들도 모두 사정이 어려워지다보니 더 이상 참사를 미디어에서 다루는 것을 원하지 않더라구요. 점점 시간이 갈수록 세월호를 언급하는 것이 상대를 불편하게 한다는 암묵적인 룰까지 생겨나가는 과정을 지켜봤어요. 일이 어떻게 이렇게 흘러가게 되었나,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세월호 참사 이후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는데도 왜 계속 이 참사를 잊지 않으려 했을까 생각했어요. 여러 세월호 관련 프로젝트를 자원봉사 하다 1주기에 지금 빠띠의 대표인 권오현님과 1주기 추모 사이트를 함께 만들게 되었어요. 그 인연으로 지금까지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세월호는 저처럼 무뎠던 사람들이 사회문제에 공감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참여할 작은 거리들을 만드는 일을 하게된 시작점이에요. 6. 세월호 이후 한국 사회가 변화했다고 느끼시는 점은?
참사에 대해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을 볼 때 저는 좀 놀랐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많은 것을 기록하고 무언가 나누는 과정을 저는 처음 겪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서툴지만 슬픔을 느끼는 법, 위로하는 법을 경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 7.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가 가장 바뀌어야 하는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인권의식. 그리고 안전과 생명을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회 전반에 안전불감증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는데, 결국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8. 세월호 아카이브 작업에 참여하시게 된 이유는?
세월호 1주기 추모 사이트 작업을 당시엔 동아리로 현재 빠띠 대표님과 진행했었는데, 많이 신경쓰지 못해서 - 그리고 2주기에는 뭔가 시도해보지도 못했어요. 계속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었는데 우주당을 통해서 올해엔 무엇 하나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